2009년 1월 3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의 인물이 — 개인인지 집단인지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 최초의 비트코인 블록을 채굴했다. 제네시스 블록. 거기에 그는 메시지를 숨겨뒀다.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2009년 1월 3일 자 영국 타임즈 헤드라인이다. 전날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던 때, 영국 정부는 다시 한번 은행들을 구제하려 하고 있었다. 사토시는 그 헤드라인을 코드 안에 영원히 새겨 넣었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은행이 필요 없는 돈을 만들겠다. 중앙 권력이 없는 화폐 시스템을 만들겠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다. 비트코인은 무엇이 됐는가.
기술은 사토시의 약속을 이행했다.
비트코인은 실제로 중앙 서버 없이 작동한다. 전 세계 수만 개의 컴퓨터 노드가 동일한 장부를 나눠서 보관한다. 누군가 한 개의 장부를 조작하면, 나머지 수만 개가 그것을 거부한다. 거래 기록을 위조하려면 전체 네트워크 컴퓨팅 파워의 51%를 동시에 장악해야 한다. 사실상 불가능하다.
10분마다 새로운 블록이 생성되고, 그 안에 수천 건의 거래가 기록된다. 한번 블록에 포함된 기록은 바꿀 수 없다. 앞뒤 블록들과 암호학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토시의 기술적 약속은 지켜졌다. 중앙은행 없이도 신뢰 가능한 거래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화폐로서의 약속은 달랐다.
2010년 5월 22일. 미국 플로리다 주 잭슨빌.
라즐로 한예츠라는 프로그래머가 비트코인 10,000개로 피자 두 판을 샀다. 역사상 최초의 비트코인 실물 거래다. 당시 비트코인 10,000개의 가치는 약 41달러였다.
2021년 11월. 같은 10,000 비트코인의 가치는 6억 9,000만 달러였다.
이것이 비트코인의 역설이다. 가치가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에 통화로 쓸 수 없다. 오늘 100달러짜리 물건을 사면서 비트코인을 냈는데, 한 달 뒤 그 비트코인이 200달러가 됐다면? 그 거래는 후회스럽다. 다음번에는 쓰지 않을 것이다.
반대도 문제다. 2022년 한 해 동안 비트코인은 고점에서 70% 이상 하락했다. 급여를 비트코인으로 받는 직원이 있다면, 그 직원의 실질 임금은 고용주의 결정과 무관하게 매달 달라진다.
화폐의 핵심 기능은 가치 저장과 교환의 매개다. 가격이 매달 2배가 되기도 하고 반토막이 나기도 하는 자산은 화폐로 기능하기 어렵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교환 매개 수단으로서의 실패"라고 말한다.
그래서 누군가 물었다. 블록체인의 기술적 장점은 살리되, 가격 변동성을 없애면 어떨까.
답이 스테이블코인이다.
원리는 단순하다. 1코인의 가격을 항상 1달러로 유지한다. 어떻게? 가장 단순한 방법: 1달러를 실제로 가지고 있으면서 1코인을 발행한다. 코인을 돌려주면 달러를 돌려준다.
Tether(USDT)가 이 방식으로 2014년 처음 등장했다. Circle의 USDC가 2018년에 뒤를 이었다. 두 코인의 합산 시가총액은 2026년 3월 기준 약 1,950억 달러.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85% 이상이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면,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달러"다. 두 가지는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설계됐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 없이 가치를 저장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 총량이 2,100만 개로 고정돼 있다. 인플레이션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가치 상승의 논리적 근거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의 기능을 블록체인 위에서 구현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 총량 제한이 없다. 수요가 늘면 더 발행한다. 핵심은 안정성이다.
두 가지가 같은 인프라 위에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서 비트코인을 살 수도 있고, USDC로 송금할 수도 있으며, 스마트 컨트랙트로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 같은 기술 레이어다. 하지만 사용자가 원하는 것에 따라 전혀 다른 금융 서비스가 된다.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이 공존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금과 달러가 공존하는 것처럼. 아니면 더 정확히는 — 금 현물과 달러 현금이 공존하는 것처럼.
세계 각국 시민들이 자국 통화 대신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트코인은 너무 변동성이 크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의 안정성에 블록체인의 이동성을 결합한다.
아르헨티나 시민이 필요한 것은 투기 자산이 아니다. 페소화가 녹아내리는 동안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달러 예금 계좌다. 스테이블코인이 그것이다. 은행 계좌 없이, 국경 없이, 수수료 최소로.
그런데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도 차이가 있다.
Tether와 Circle은 같은 달러 페깅 스테이블코인이지만 운영 방식, 투명성, 규제 대응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 차이가 2023년 SVB(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때 드러났다.
1달러라고 쓰여 있지만, 모든 1달러가 같지 않다.
다음 글에서 이야기한다.
— NODOS
핵심 요약
- 비트코인은 기술적 약속을 이행했다. 중앙은행 없이 신뢰 가능한 거래를 만들었다. 하지만 가격 변동성 때문에 실용적 화폐로 기능하지 못했다.
-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에 가격 고정을 결합했다. 1코인 = 1달러. 달러 준비금으로 1:1 담보. 2026년 기준 시장규모 약 3,180억 달러.
-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면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달러"다. 다른 목적으로 설계됐고,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