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어느 카페. 관광객이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지갑 앱에 USDT 500달러가 있다. 카드 수수료 없이, 환전소 대기열 없이, 이 디지털 달러로 커피값을 내고 싶다.
카페 카운터에는 카드 단말기와 카카오페이 QR이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받는 방법은 없다.
관광객은 지갑을 닫고 신용카드를 꺼낸다. 해외 이용 수수료 3%가 붙는다.
2024년 한 해 스테이블코인 전송액은 33조 달러였다. Visa와 Mastercard의 합산 처리량을 초과한다. 지갑 수는 2억 개를 넘었다. 이 흐름의 어디에 그 카페의 커피 한 잔은 없는가.
숫자가 알려주지 않는 것이 있다.
33조 달러의 거의 전부는 투자·차익거래·송금의 거래다. 실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 대가로 지불된 거래는 그 중 1% 미만이다. Chainalysis의 2024년 보고서는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거래의 약 0.3%만이 상거래 결제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하면 — 99.7%의 거래는 결제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보유하는 수단이 됐다. 보내는 수단이 됐다. 하지만 쓰는 수단은 아직 아니다.
이것이 스테이블코인의 '마지막 1마일' 문제다. 물류 산업에서 쓰는 표현이다. 상품이 공장을 떠나 창고까지 오는 999마일보다, 창고에서 손님 집 현관까지 가는 마지막 1마일이 가장 어렵고 가장 비싸다.
스테이블코인도 똑같다. 발행은 이미 됐다. 전송도 된다. 하지만 실제로 어느 가게의 카운터에 도착하는 것은 — 가장 멀다.
왜 멀까.
세 가지 벽이 있다.
첫째, 기술의 벽.
카드 결제는 1.5초 만에 끝난다. 단말기에 갖다대고, 승인되고, 영수증이 나온다. 이 흐름은 30년 동안 다듬어진 것이다.
블록체인 결제는 다르다. 지갑 앱을 열고, QR을 스캔하고, 가스비(수수료)를 확인하고, 서명하고, 블록이 확정되기를 기다린다. 이더리움 메인넷에서는 12초에서 수 분까지 걸린다. 커피 한 잔을 사는 데 이 속도는 참을 수 없다.
레이어2와 고속 체인들의 진화로 이 문제는 좁혀지고 있다. Solana, Base, Polygon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전송이 1초 내에 끝난다. 하지만 이 인프라가 보편 표준이 되지는 않았다. 사용자는 어떤 체인에서 USDC를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가맹점은 그 체인을 지원해야 한다. 카드처럼 "어떤 카드든 꽂기만 하면"이 되지 않는다.
둘째, 규제의 벽.
카드사는 이미 금융 규제 안에 있다. KYC, AML, 가맹점 심사, 분쟁 조정 — 이 모든 프레임워크가 확립돼 있다.
스테이블코인 결제는 이 프레임워크의 경계에 있다. 누가 결제했는지, 그 돈의 출처가 뭔지,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는지 — 법이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유럽은 MiCA로 이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미국은 GENIUS Act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규제했다. 하지만 '결제'에 대한 명확한 프레임워크는 아직 진행 중이다. 한국은 더 뒤에 있다.
이 법적 모호성 속에서 가맹점은 망설인다. 합법성이 확인되지 않은 결제 수단을 받아들일 유인이 약하다. 플랫폼 사업자 역시 망설인다. 어느 라이선스가 필요한지, 어느 라인이 허용되는지 — 답이 확정되지 않았다.
셋째, 경제의 벽.
가맹점이 스테이블코인을 받으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 카드보다 수수료가 낮거나, 새로운 고객을 얻거나, 입금이 빠르거나.
현재는 이 중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스테이블코인을 원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환전 수수료가 붙는다. 새로운 고객 — 스테이블코인을 가진 사람 — 은 아직 소수다. 입금 속도는 시스템 설계에 따라 다르다.
닭과 달걀의 문제다. 가맹점이 받아들여야 사용자가 많아지고, 사용자가 많아져야 가맹점이 받아들인다.
한국에서는 이 문제가 더 날카롭게 드러난다.
한국은 카드 인프라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다. 현금 없는 사회는 이미 현실이다. 편의점에서 껌 하나 살 때도 카드가 당연하다.
이런 환경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세요"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한국인 대부분에게 더 좋은 대안이 이미 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국인은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2024년 한 해 1,636만 명 한국을 찾았다. 그들 중 상당수가 이미 디지털 지갑을 갖고 있다. 환전소의 줄, 카드 해외 사용 수수료, 낯선 통화의 불편함 —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여행에서 마찰이 된다.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 약 100만 명 거주한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스테이블코인으로 임금의 일부를 받거나 본국 가족에게 송금한다. 본국에 보낼 때, 일상에서 쓸 때, 그 돈이 한국 가게에서 직접 쓰일 수 있다면 환전의 과정은 사라진다.
이 두 그룹을 위한 마지막 1마일이 열린다면 무엇이 바뀔까.
카페 카운터의 QR 코드 하나가 바뀐다. 사장님은 새로운 고객을 맞는다. 관광객은 환전소 대기열을 건너뛴다. 외국인 노동자는 월급의 일부를 동네 가게에서 쓴다.
이것이 기술이 진짜로 쓸모 있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마지막 1마일은 기술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규제가 따라와야 한다. 가맹점의 이해가 필요하다. 사용자 경험이 단순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 결제 수단의 탄생 순간이다.
카드가 그랬다. 1950년 Diners Club가 처음 등장했을 때, 가맹점은 14곳, 사용자는 200명이었다. 반세기가 지나서야 모든 카운터에 카드 단말기가 놓였다.
모바일 결제도 그랬다. 2000년대 초 피처폰 결제 시도는 실패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NFC가 표준이 되고, 은행이 연동되기까지 — 20년이 걸렸다.
스테이블코인 결제는 어디쯤에 있을까. 발행은 됐고, 보유자는 있다. 인프라는 구축되고 있다. 결제 레이어는 — 아직 시작점이다.
시작점이라는 것은 비관의 근거가 아니다. 가능성의 근거다.
그런데 마지막 1마일을 누가 놓을 것인가.
발행사가 할까. Tether와 Circle은 토큰을 만든다. 소매 결제 인프라를 깔지는 않는다.
거래소가 할까. 업비트, 빗썸, Coinbase는 거래 플랫폼이다. 그들의 관심은 거래소 안에 있지, 카페 카운터에 있지 않다.
카드사가 할까. Visa와 Mastercard는 스테이블코인 연동을 실험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여전히 카드 기반이다.
남은 것은 — 새로운 누군가다. 기존 시스템의 바깥에서 시작하는 플레이어.
역사는 늘 그랬다. PayPal이 은행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Stripe이 카드사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결제 수단은 기존 플레이어의 주변에서, 혹은 바깥에서 자라난다.
다음 글에서는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본다. Visa는 어떻게 '원장 위의 원장'을 만들었고, 왜 결제 네트워크는 한번 만들어지면 바꾸기 어려운가. 스테이블코인의 마지막 1마일이 구축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다음 글에서 이야기한다.
— NODOS
핵심 요약
- 2024년 스테이블코인 전송액 33조 달러(Visa·Mastercard 합산 초과). 그러나 상거래 결제는 0.3% 미만. 99.7%는 결제가 아닌 투자·차익거래·송금이다.
- 마지막 1마일을 가로막는 세 가지 벽: 기술(속도·체인 파편화), 규제(법적 모호성), 경제(가맹점 수용 유인 부족). 한국은 발달한 카드 인프라 탓에 이 역설이 더 뚜렷하다.
- 국내 거주 외국인(관광객 1,600만 명, 노동자 100만 명)에게는 이 마찰이 다르게 작동한다. 마지막 1마일이 열리면 기술이 실제 쓸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