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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전쟁

러시아 A7A5 1,000억 달러, 이란 CBI USDT 결제, 북한 라자루스 그룹 15억 달러. 달러 패권의 무기화와 제재의 미래.

NODOS | #08
보이지 않는 전쟁
The Invisible War

2022년 2월 24일, 러시아 전차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다.

6일 뒤, 미국과 EU는 러시아 중앙은행의 해외 외환보유액 3,000억 달러를 동결했다. 러시아 주요 은행들은 SWIFT에서 퇴출됐다. 전쟁은 총성으로 시작됐지만, 두 번째 전선은 화면 속 숫자들의 전쟁이었다.

러시아는 신속하게 대응했다. 달러 결제를 루블, 위안, 그리고 스테이블코인으로 우회하기 시작했다.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제재 회피 목적의 암호화폐 거래에서 약 1,000억 달러(A7A5 라벨 부여)의 흔적이 포착됐다.

완전히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달러 기반 글로벌 금융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가능성을 증명했다. 스테이블코인이 제재의 구멍이 될 수 있다.


이란의 사례는 더 오래됐다.

이란은 2012년과 2018년 두 차례 SWIFT에서 퇴출됐다. 특히 2018년 트럼프 행정부의 JCPOA(이란 핵 합의) 탈퇴 이후 재개된 제재는 이란 경제를 직격했다.

이란은 대응책을 찾았다. 2021년 이후 이란 중앙은행(CBI)은 공식 채널 밖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원자재 수입 대금을 결제하기 시작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블록체인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의 2023년 보고서는 이란이 암호화폐를 통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국제 거래를 이어갔다고 분석했다.

스테이블코인은 자동으로 제재를 피해주지 않는다.

Tether는 OFAC 요청에 따라 수십 개의 지갑을 동결했다. Circle도 마찬가지다. USDT를 발행하는 민간 기업이 미국 법의 관할 아래 있는 한, OFAC이 "이 지갑을 동결하라"고 요청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

GENIUS Act는 이 요건을 더 명확히 했다. 모든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기술적으로 특정 지갑의 토큰을 동결하거나 소각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역설이 생긴다. 제재를 피하려는 국가들은 중앙화된 스테이블코인(USDT, USDC) 대신 탈중앙화된 시스템으로 이동한다. 그 시스템에는 동결 기능이 없다.


북한의 이야기는 다르다.

라자루스 그룹. 북한 정찰총국 소속으로 알려진 해킹 조직이다. 미국 FBI, 국무부, 재무부가 공동으로 지목하고 있다.

2024년 2월.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비트(Bybit)가 해킹됐다. 피해액은 15억 달러. 역사상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 절도였다. 미국 당국은 라자루스 그룹의 소행으로 결론 지었다.

라자루스 그룹의 전략은 정교하다. 복잡한 스마트 컨트랙트를 이용해 훔친 암호화폐를 세탁한다. 여러 체인을 거쳐 추적을 어렵게 만든다. 최종적으로는 장외 거래(OTC) 브로커를 통해 법정화폐로 전환한다.

UN 패널 2024년 보고서는 북한이 2017년 이후 암호화폐 절도를 통해 약 30억 달러를 탈취했으며, 그 자금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사용됐다고 추정했다.

달러 제재로 봉쇄하려 했던 나라가, 달러 제재가 적용되지 않는 채널로 무기 개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구조를 드러낸다.

달러 패권은 SWIFT와 코르레스뱅킹을 통해 집행됐다. 미국이 통제하는 채널에서 배제하면 경제적 고통을 줄 수 있었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채널 밖에 새로운 레이어를 만들었다. 완전히 달러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 여전히 달러 페깅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 인프라를 직접 통과하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에게 복잡한 문제다.

한편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달러 패권을 강화한다. 99%의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페깅이다. 세계가 달러에 더 의존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 채널 위에서 달러 제재를 피하는 세력이 등장한다. 제재의 효력이 약화된다.

미국이 선택한 해법은 통제다. GENIUS Act가 발행사에게 동결 기능을 의무화한 것, OFAC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와 협력 관계를 구축한 것은 그 방향이다. 달러의 채널을 확장하되, 그 채널 위의 통제력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시리즈는 백악관에서 시작했다.

2025년 7월, 트럼프가 GENIUS Act에 서명했다. 재무장관은 스테이블코인을 달러 패권의 도구라고 선언했다. Tether와 Circle은 미국 국채를 한국보다 많이 보유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시민들은 페소 대신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하고 있다.

돈이란 무엇인가. 은행 앱의 숫자에서 시작한 질문이 여기까지 왔다.

결론은 하나다. 돈은 물질이 아니다. 신뢰다. 그 신뢰를 누가 설계하고, 누가 집행하고, 누가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얻는가. 이것이 화폐 시스템의 정치학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새로운 답을 제시하고 있다. 아직 완전하지 않다. 리스크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작동하고 있으며,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이미 선택하고 있다.

그 선택이 만들어가는 세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 NODOS


핵심 요약
  • 러시아는 SWIFT 퇴출 후 스테이블코인으로 제재를 우회했다. 약 1,000억 달러 규모의 흔적이 포착됐다. 스테이블코인은 제재의 구멍이 될 수 있다.
  • 북한 라자루스 그룹은 2024년 바이비트 해킹으로 15억 달러를 탈취했다. UN은 암호화폐 절도로 마련된 자금이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됐다고 추정한다.
  • 미국의 전략: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으로 달러 패권을 강화하되, 발행사에게 동결 기능을 의무화해 통제력을 유지한다. 채널 확장과 통제력 보존의 동시 추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