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택시 기사는 팁을 USDT로 받는다.
식료품점 주인은 페소 현금을 받자마자 앱을 열어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한다. 대학교수는 급여의 절반을 받는 즉시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옮긴다. 이것은 예외적인 행동이 아니다. 2025년 기준 아르헨티나 암호화폐 사용자의 60% 이상이 정기적으로 페소를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연간 인플레이션이 100%를 넘는다. 2023년 최고 211%를 기록했다. 페소로 100만 원을 가지고 있으면 1년 뒤 그 돈의 실질 구매력은 절반 이하로 줄어있다.
페소를 들고 있는 것이 곧 손실이다.
이것이 아르헨티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튀르키예에서 스테이블코인 구매액은 GDP의 4.3%를 차지한다. 세계 최고 비율이다. 리라화는 2018년 이후 달러 대비 80% 이상 하락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사용자가 2,600만 명이다. 나이라화가 달러 대비 65% 이상 하락하는 동안, 정부가 야심 차게 출시한 eNaira CBDC는 발행된 지갑의 98.5%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시민들은 국가의 디지털 화폐 대신 미국 민간 기업이 발행한 디지털 달러를 택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이 석유 수입을 달러로 받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국내 거래의 상당 부분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마두로가 사실상 베네수엘라 경제를 스테이블코인 위로 옮겼다"고 보도했다.
이 현상에는 이름이 있다. 디지털 달러화(digital dollarization).
달러화 자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에콰도르는 2000년에 공식적으로 달러를 법정통화로 채택했다. 파나마는 1904년부터 달러를 쓰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다르다.
국가가 결정하지 않았다. 시민들이 선택했다. 스마트폰이 있고 인터넷이 연결되면 — 은행 계좌도, 정부 승인도, 신분증도 필요 없이 —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할 수 있다.
이 흐름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수치로 보면 명확해진다.
2024년 기준 스테이블코인 연간 거래량: 33조 달러. Visa와 Mastercard의 합산 처리량을 초과한다.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의 99%가 달러 페깅이다. 그 거래의 80% 이상이 미국 밖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 정부는 이 거래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미국 은행이 중간에 있지 않다. 그런데도 그 거래의 99%는 달러 기반이다. 미국이 의식적으로 설계하지 않은 달러 인프라가 세계에 퍼져 있다.
Federal Reserve는 2025년 보고서에서 이 현실을 인정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9%가 달러에 연동되어 있어, 스테이블코인 사용 증가가 더 많은 신흥국의 사실상 달러화를 야기할 수 있다."
'야기할 수 있다'가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다.
왜 시민들은 자국 통화 대신 외국 민간 기업의 디지털 토큰을 선택하는가.
답은 단순하다. 그것이 더 나은 돈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가치 보존 기능에서는.
페소, 리라, 나이라, 볼리바르. 이 통화들의 공통점은 정부의 잘못된 통화 정책이 국민의 저축을 녹여왔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지폐를 찍어 정부 적자를 메울 때, 그 비용은 저축을 들고 있는 시민에게 인플레이션으로 전가된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세금을 피하는 수단이다. USDT나 USDC를 들고 있으면 그 나라의 중앙은행 정책과 무관하게 달러 가치가 유지된다.
하지만 이것이 좋은 일인가. 복잡한 질문이다.
한편으로는 시민이 나쁜 통화 정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효력이 약해진다. 자국민이 자국 통화를 버리면, 정부의 경제 조절 능력이 감소한다. 이것은 주권 문제다.
나이지리아 정부가 eNaira를 출시하면서 USDT를 금지하려 했을 때, 시민들은 VPN을 설치했다. 규제를 우회했다. 정부보다 시장이 빨랐다.
한국은 이 흐름에서 어디에 있는가.
원화는 안정적이다. 연간 인플레이션이 100%를 넘는 아르헨티나와는 다르다. 한국 시민이 원화를 버리고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할 동기는 현재로서는 약하다.
하지만 인구의 32% — 약 1,500만 명 — 가 암호화폐를 보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 기업들이 동남아 파트너에게 대금을 지불할 때, 이민자 가족들이 해외 송금을 할 때,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실용적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이 이 기술을 어떻게 다룰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왜 망설이고 있는가.
다음 글에서 이야기한다.
— NODOS
핵심 요약
- 아르헨티나·튀르키예·나이지리아·베네수엘라 시민들은 자국 통화 대신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국가가 만들지 않은 디지털 달러화다.
- 스테이블코인 연간 거래량 33조 달러. Visa+Mastercard 합산 초과. 거래의 80%가 미국 밖. 99%가 달러 페깅.
- 나이지리아 eNaira는 지갑의 98.5%가 미사용으로 사실상 실패했다. 시민들은 국가의 CBDC 대신 민간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택했다.